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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이야기

by 분주한 배짱이 202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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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타입

'증오'의 경우처럼 인종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스테레오타입과 인물의 부정적 혹은 긍정적 평가로 이어진다. 스테레오타입은 무엇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스테레오 타입은 어느 집단의 사람들을 몇 개의 같은 특징으로 반복적으로 특징짓는 것이다. 집단은 연령, 계층, 인종, 종족성, 젠더, 성적 지향성, 직업, 머리 색깔 등 거의 모든 것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의 흔한 예를 각각 살펴보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노쇠하고, 엄청난 부자들은 불행하고, 흑인은 성욕이 과도하고, 유대인은 인색하고, 여자는 히스테리컬하고, 게이 남자는 여성적이고, 교수들은 건망증이 심하고, 금발인 여자는 멍청하다는 것이다.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미국 영화사에서 일관성 있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가끔은 문화 전반에서 유통되는 스테레오타입과 영화에 등장하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국가의 탄생'과 같은 무성영화 시대의 몇몇 영화들이 흑인을 난폭한 행동을 좋아하는 위협으로 묘사했지만, 무성영화 시대로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주류 영화는 그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개 천한 일에 종사하는 순진하고 주변화된 인물들로 그렸다. 고전 영화 시대에서 생각나는 인색한 유대인이 몇 명이나 되는가? 그러나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이 시기에 실제 미국 문화에서는 아주 만연한 것이었다. 영화가 문화적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을 복잡한 방식으로 중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가령 전미 유색인종 지위 향상협회와 유대인 비방 반대연맹과 같은 단체가 스테레오 타입 비하에 대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항의하는가는 분명히 영화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널리 인식된 특정 스테레오타입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스테레오타입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수색자'는 백인 여자와 인디언 남자 사이의 다른 인종 간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며, 흑백 인종 갈등을 간접적으로 다룬 것으로 읽힐 수 있다. 1950년대 미국 인디언은 백인들에게 주변적이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집단이었다. 흑인 남자의 왕성한 능력에 대한 두려움과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사이의 다른 인종 간 결합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반응은 그 당시 강력했다. 따라서 영화는 흑인을 인디언으로, 현재를 19세기로 대치함으로써 당시 극히 민감한 인종적 두려움을 다룬 것이다.
어느 정도의 스테레오 타입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가령 흑인의 스테레오타입과 백인의 스테레오타입은 무엇이 다른가? 혹은 금발 여자와 흑인 여자, 혹은 교수와 포주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백인들도 자주 악당이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캐스팅되는데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백인과 유색인종을 스테레오타입으로 표현하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주된 차이가 있다. 하나는 영화와 관계가 있고, 다른 하나는 사회와 관계가 있다. 첫째, 백인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과 성격으로 표현된다. 가끔 백인은 일차원적인 악당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역마차' 같은 영화에서 일차원적인 영웅 혹은 선한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백인 사이코 킬러가 형사와 대조되는 '더티 해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트루 라이즈'에서 불쌍한 중고차 세일즈맨처럼 성적인 무능력으로 놀림을 받는 백인도 있지만, '역마차'와 '더티 해리'에서처럼 그러한 인물은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영웅에 의해 상쇄된다.


영화에 나오는 백인 캐릭터들이 그토록 다양하기 때문에, 백인 인종 자체가 그중의 하나로 특정 지워지지는 않는다. '역마차'를 보는 사람이 옛 서부 시절의 모든 백인은 검은 모자를 쓴 악당이라고 결론짓거나 '더티 해리'를 보고 현대의 모든 백인 청년은 사이코 킬러라고 결론짓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트루 라이즈'를 보고 모든 백인 남자가 불쌍한 애인감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그 영화에서 다른 이미지들이 그런 일반화를 막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마다 유색인을 주변적인 인물과 하인, 혹은 위험하고 불쾌한 인물로 묘사한다면 사람들은 흑인들 자체가 그렇다고 결론 내릴지도 모른다. 인디언이 소리 지르는 야만인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잡역부나 세탁부로, 흑인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으로 묘사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보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인종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할지 모른다.

 

'캠퍼스 정글'에서 흑인 감독 존 싱글튼은 로렌스 피시번을 고상한 지식과 도덕성을 갖춘 흑인 대학 교수로 캐스팅한다. 이것은 흑인 남자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스테레오타입을 역전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교수들의 잘 알려진 스테레오타입 중 하나를 고착화시킨다. 그것은 교수는 항상 파이프를 피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말썽꾼은 백인 남성 무리며, 인종차별적인 백인 경찰 등 백인에게서 당하는 학대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흑인 갱 단원이 아니다. 영화는 강간당한 사람이 레즈비언이 된다는 통념 등 레즈비언 관련 스테레오 타입에 도전을 가자면서 동시에 다른 것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 짧은 리스트가 보여주듯이 모든 것이 동등하게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학교수를 파이프 담배와 연관시키기보다는 백인 경찰이 인종차별주의라는 등의 사회적 함의에 당연히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캠퍼스 정글'은 스테레오타입을 통한 묘사를 피해 가면서 영화에서 흑인의 표현 범위를 확장할 필요를 지적한다. 싱글튼의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그는 주류 영화가 흑인에 대해 고착하는 스테레오타입과 닮은 다양한 중요도의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피해자라고 반드시 비슷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많은 비평가는 스파이트 키가 '모베터 블루스'에서 재즈 세계에서 돈을 밝히는 유대인의 묘사를 통해 반유대주의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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