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판단과 미학적 판단
'킬빌 1'은 좋은 영화인가? 이 영화를 감독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논란거리가 되는 인물이다. 많은 점은 관객들에게 그는 새롭고 튀는 스타일의 영화 제작법을 창조한 컬트적 영웅이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불쾌할 정도로 적나라하고, 불필요하게 폭력적인 영화를 공급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영화가 많은 사람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성적 행동과 폭력적인 행위를 유발하는지, 아니면 이 영화들이 우리 사회의 그러한 성과 폭력을 단지 반영할 뿐인지에 대해 날카롭고 공론화된 논쟁 속에 살고 있다. 이런 논의는 윤리의 문제라는 틀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중대한 결과를 내포한다. 윤리는 현재 정치, 비즈니스와 학문의 세계, 그리고 미디어와 연예계에서 뜨거운 주제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사회를 위한 옳고, 좋은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거기에 걸린 부담도 큰 것이다. 영화 속의 폭력이 관객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평가할 때 그 믿음의 영향을 분명히 받는다. 영화의 좋고 나쁨에 대한 그들의 미학적 평가는 그 영화가 어떠한 성적 그리고 폭력적 행동을 자극할 것인가에 대한 평가에 의해 일부 결정될 것이다. 사실상 그들은 그런 신념에 기초하여 어떤 영화를 검열하는 데 찬성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성적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노골적인 성과 폭력이 담긴 영화를 볼 것이고, 다른 기준에 기초하여 영화를 좋아할 것인지 싫어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영화가 사회에서의 성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하는가 아니면 반영하는가로 귀결된다. 우리가 보기에 자명한 대답은 둘 다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미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사로잡고 있는 이런 이슈는 그런 단순한 공식으로 파악하기에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논쟁하고 헤매고 다니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꾸준히 볼 수 있듯이 그렇게 단순화된 이분법과 양극화로는 영화적 표현의 어떤 양상의 진정한 복합성도 파악할 수 없다. 그런데 특히 이번의 경우는 그 부적절함과 단순성이 눈에 띈다. 영화가 사회에 무언가를 단순히 유발하거나 반영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영화의 근본적인 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 복합적인 재현적 구축물이며, 그 자체로서 다른 무엇을 단순히 유발하거나 반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영화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직접적인 인과관계 바깥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 자체가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에 영화는 다른 무엇을 단순히 유발하거나 반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 젠더, 인종, 혹은 계층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영화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중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재현적 시스템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세련된 비평적이고 분석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영화에 대한 다른 통념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친구와 극장을 나서면서 방금 본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 경험이 모두 있다. 그러한 논쟁 중에 우리는 "그건 사실적이지 않아" 혹은 "결말이 마음에 안 들어"와 같은 말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진술을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이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론가의 영역에 서 있는 것이다. 예술작품이 좋은가 나쁜가에 대해 미학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예술 이론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 부분이라는 말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론은 취향에 대한 단순한 판단 이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러한 판단조차도 단순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원초적 본능'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플롯에 너무나 중요한 얼음송곳 살인자가 여자주인공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확실한 답변을 원했지만, 다른 이들은 속편에 대한 너무 뻔한 설정이라고 빈정댔다. 두 경우 모두 관객들은 완벽한 서사적 종결을 영화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보았는데, 그 말은 우리가 마지막에 가서는 영화가 제기한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관객들은 인간에 대한 새들의 잔인한 공격을 전제로 한 '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새가 왜 공격하는지, 혹은 공격을 통제할 수 있는지 끝내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프'의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은 늑대로 변신하고, 그와 낭만적인 커플이 되는 여자 주인공도 늑대인간이 되어 그를 따라 황야로 들어간다. 어떤 비평가들은 영화가 다루는 주요한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해결하기를 피하는 무리한 결말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러한 비평가들은 영화의 결말이 영화의 본체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어, 주된 갈등을 만족스럽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말이 해결되지 않는 이슈를 새로 벌여놓거나 그걸로 끝난다면 결말이 약하거나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판단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영화이론가들은 많은 이슈를 고려해야 한다. 미학적 판단은 리얼리즘, 독창성, 스타일상의 통일성과 같은 것들에 대한 이론적 가정과 연결되어 있다. 왜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과는 다른 전제로 작동하는 영화를 보면 왜 우리는 지루하거나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왜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영화 이론가들은 너무 뻔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영화란 무엇인가? 카메라는 무엇인가? 관객은 어떻게 영화를 보는가? 관객은 보는 영화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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