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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

by 분주한 배짱이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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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시각적 이미지와 소리를 포함하고 많은 서사적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텔레비전과 달리 라디오는 시각적 요소도 없고 서사적인 프로그램 편성도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이 도래하기 전 몇십 년 동안 라디오는 서사로 가득 찬 프로그램 편성을 했다. 실제로 '론 레인저', '사설탐정 리처드 다이아몬드', '세상이 돌아갈 때'와 같은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는 텔레비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몇 사람의 경력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오슨 웰스의 경력인데, 그는 '그림자'의 주인공 목소리였으며 '우주전쟁'의 라디오 버전은 청취자들이 실제로 화성인이 침공한 것으로 오해하면서 널리 공포를 자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불과 3년 후에 그는 역사상 가장 높이 평가를 받는 미국 영화 '시민 케인'을 감독하고 주연했다. 막스 형제 코미디 영화 팀의 그라우초 막스는 '인생을 걸어'라는 재치 있는 퀴즈쇼를 처음에는 라디오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텔레비전에서 진행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관련해서 라디오를 공부하는 것은 이 매체 간의 중요한 차이를 밝혀줄 뿐 아니라 작가성과 창조성의 문제도 조명해 준다. 서사 라디오 프로그램은 대개 광고 방송, 그리고 방송국 로고를 포함해서 30분 정도 진행한다. 엄격한 시간의 제한은 30분, 한 시간, 심지어 두 시간이라는 미리 정해진 시간대에 모든 프로그램을 맞추어야 하는 텔레비전과도 관련성을 가진다. 어떤 시기의 영화던 대부분의 영화가 거의 같은 시간 프레임을 지키기는 하지만 영화마다 다르고 가령 어떤 영화는 세 시간 이상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햄릿'에서 인물, 그들의 딜레마와 운명, 삶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이 극의 주제를 포함해서 허구 세계를 창조한다. 반면, 영화에서는 허구 세계, 인물과 주제가 복잡한 시각적 텍스트에서 만들어지며 거기서 인물이 말하는 대사는 한 부분, 가끔은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영화에서 언어는 디지시스의 세계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언어는 그런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영화감독은 예술적으로 복잡한 허구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시나리오 작가보다 훨씬 더 중요할지 모른다. "연극은 작가의 매체이고 영화는 감독의 매체이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라디오는 이 모든 것의 어디에 끼 넣을 수 있을까?
퍼포먼스 요소를 담고 있는 모든 예술과 매체 중에서 라디오는 단연 작가의 매체이다. 연극에서처럼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는 극적 세계를 창조하고 인물 자신과 그들의 딜레마와 그들의 세계 본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스토리, 플롯, 주체, 이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작가의 소관이다. 연극에서는 우리가 적어도 배우들이 연기한 것을 보지만 라디오에서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실제로 라디오 연출자의 역할은 배우들이 많은 배역을 음성적으로 해석하는 것, 추가되는 음향효과를 연출하는데 한정되어 있다. 가령 어떤 인물이 화가 나서 방을 나가면, 우리는 발걸음 소리와 꽝 닫히는 문소리를 듣는다. 생방송 일때는 그러한 연기가 필요했지만 여기서 핵심은 연출자의 역할이 허구적 세계를 창조적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극 연출가와 비교해서 라디오 연출하는 작가의 대본을 해석할 여지가 거의 없다. 청취자는 독자들이 소설을 읽을 때 하는 것처럼 이 중요한 것들의 모습에 대해 상상할 뿐이다.
소리의 세계에 라디오가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은 그 형식 내에서 잠재적인 창조의 영역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비해 영화는 시각적으로 눈부신, 그리고 범상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기억에 남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가령 '북북서'는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연방 요원과 악당 간의 총격 장면으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의 낯익은 얼굴 위로 인물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것은 눈을 사로잡는 광경이다. 히치콕은 이것을 알았고 그렇게 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조차 등장인물들을 거기 배치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그 상황이 자아내는 유머를 깨달았고, 어느 시점에서는 그 영화를 '링컨의 콧속에 있는 사나이'라고 명명할 것을 고려했다. 상황의 위험이 충분치 않기도 한 것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산꼭대기에서 떨어지고 길게 긴장이 연속되는 장면에서 연방 요원에게 구출되며 안전하게 끌어올려진다. 이 장면이 마운트 러시모어가 아닌 다른 절벽에서 일어났더라면 전혀 다른 효과를 낼 것이다.
'북북서'의 마운트 러시모어와 같이 시각적으로 극적인 세팅이 라디오에는 전혀 효과가 없지만 라디오라는 매체도 극적인 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를 사용할 기회가 있다. 가령 소리가 확대되거나 퍼져 있는 장소, 혹은 낯선 음향이 전경화되어 있는 장소를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서부의 사나이'와 같은 와이드스크린 서부 영화가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황량하고 탁 트인 평원에서 대결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면 라디오 서부극의 총격전은 총성의 메아리가 들리고 바위에 맞아 되튀기는 총알의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협곡이 더 훌륭한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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