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론이란 무엇인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미학적 판단을 내리지만, 그들 대부분이 영화 이론가는 아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이론가들은 미학적 판단의 기초를 영화란 무엇인가, 관객은 어떻게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느냐는 문제와, 어떤 영화가 좋은 어떤 영화가 나쁜가라는 문제 사이의 논리적 연결점에 둔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이론이란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그러한 판단의 바탕이 되는 가정과 범주를 검토하는 것이다. 모든 감독이 영화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비슷한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 그건 분명히 아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당혹스러울 만큼 다양한 영화 이론에 대해 암시적이거나 명시적으로 기초한 당혹스러울 만큼 다양한 영화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통념은 우리 문화에 너무나 퍼져 있고, 영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얼리즘의 대중적 통념의 한계와 오류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이 영화에 반응할 때 대중적인 리얼리즘을 거론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적이고 검토되지 않은 리얼리즘의 통념과 복잡하고 이론적인 리얼리즘 개념의 차이, 그리고 두 가지가 형식적인 영화이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적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기
영화의 결말처럼 겉보기에 단순한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이슈가 얼마나 복합적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많은 영화 관객이 판단의 근거가 되는 이론적 가정을 의문시하지 않고 미학적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우리는 모두 영화의 결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왜?"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해서는 좋은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그런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해져 있고, 또 영화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영화 이론가들은 가끔 암묵적이며 검토되지 않은 가정을 명쾌하게 함으로써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고 한다.
"저건 사실적이지 않아"라고 반응하는 또 다른 예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은 '원초적 본능'이나 '새'의 끝에 답변이 이루어지지 않은 서사적 질문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대신 그런 결말을 비사실적이라고 거부할 수 있다. '원초적 본능'의 남자 주인공은 똑똑하고 경험 많은 살인 사건 형사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는 여자 주인공이 살인 용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유혹을 느끼며, 그녀에게서 많은 혼란스러운 행동을 목격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침대 밑에 놓인 얼음송곳을 보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이다. 어떤 사람은 "저런 위험에 자신을 맡기는 멍청한 형사가 어딨어!"라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적으로 간주하는 것의 범위가 장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리얼리즘의 개념은 놀라울 정도로 끈질기며 거의 모든 영화에서 작동한다. '새'는 공포영화이지만 어떤 사람은 우리가 매일 함께 살고, 사람을 보통 공격하지 않으며, 인간의 적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동물에 의해 세상이 설명할 수 없는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왜 영화에서 보는 것이 모조리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당황해서 "영화는 원래 그래야 하는 거잖아"라는 말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적'이라는 말을 무슨 의미로 썼느냐고 그들에게 물으면 여러 가지 다른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영화가 사실적이 아니기 때문에 졸작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왜 사실적으로 되어야 하는지, 사실적이란 무슨 의미인지를 말하기란 어렵다.
영화 이론의 역사
영화가 시작하고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대한 이론은 형식주의와 리얼리즘이라는 대립한 진영으로 나누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형식주의자들은 영화 제작 방법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형식적 특징을 강조했다. 가령 그들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 보는 것은 주변적인 시야 속으로 점점 사라지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은 영화 프레임의 네 개의 면에 의해 묘사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화면 공간과 외화면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공간을 보는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과는 다른 예술적 행위라는 결론을 지지한다. 가령 실제 삶에서는 외화면 음향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가 어느 방에 서서 다른 곳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금방 머리를 그쪽으로 돌려 그것을 조사할 수 있다. 우리는 영화관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앉은 곳의 오른편의 외화면에서 소리가 나오면 우리는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몸을 급격히 돌리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 형식과 실제 삶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리얼리스트들은 영화의 기계적이고 기록적인 성질뿐 아니라 카메라와 그 앞에 있는 세계 간의 연결을 강조했다. 만약 사라 번하트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으면, 카메라는 그 연기를 영화에 포착한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우리가 그 연기의 현장에 없었지만, 그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형식주의자와 리얼리스트 간의 차이가 캔버스로서의 영화 화면과 창문으로서의 영화 화면 사이의 차이에 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화면을 캔버스로 보는 형식주의 영화감독들은 화가들처럼 나름대로의 구도의 규칙과 법칙을 사용하여 프레임 내에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며 프레임 너머에는 중요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얼리즘 감독들은 우리 시야 밖에 있는 더 큰 세계의 작은 일부를 틀 속에 담은 창문을 내다보는 것처럼 작업한다.
양쪽 진영에서 다른 스타일들이 개발되었다. 형식주의 이론이 먼저 개발되었다. 영화가 새로운 예술 형식이므로, 그것이 존중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기존의 예술 형식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영화가 단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특별한 예술적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창조성이 발휘될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기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영화가 존중받는 형식이 된 다음에 리얼리즘 이론가들은 매체의 기록적인 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영화의 리얼리즘 이론과 형식주의 이론은 매우 양극화되고, 근본주의적이고, 규범적이다. 이론가들은 영화의 정수가 사실주의적이거나 형식주의 둘 중 하나라고 보았고, 둘 중 하나를 지지하는 영화제작 스타일을 옹호하였다. 1960년대 후반쯤에는 이런 이분법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무너졌다. 몇몇 이론가들은 낡은 형식주의/리얼리즘 이분법을 탈피함으로써 영화에 접근했고, 다양한 작품을 인용하면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은 어느 쪽의 패러다임에도 부응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 모든 영화에는 스타일이 있으며 스타일은 실제 세계가 아니라 예술 작품의 속성이다. 우리는 모든 스타일이 그것이 표현하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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