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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

영화에서의 인종에 대한 이야기

by 분주한 배짱이 2023.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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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영화에서 인종 문제를 거론하면 많은 사람은 세 가지 가정을 한다. 첫째, 사람들은 그 주제가 미국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혹은 북미 원주민과 같은 유색인종의 묘사에 관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둘째, 사람들은 그러한 묘사가 그 인종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거나 도움을 주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그와 관련된 또 하나의 가정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영화의 긍정적인 묘사와 부정적인 묘사 간에 분명하고 중요한 차이가 있으며, 전자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고, 후자는 나쁜 영향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가정이다. 셋째, 대부분의 사람은 백인이 감독한 영화와 흑인이 감독한 영화 간에는 인종 묘사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가정한다.
이 세 가지 가정은 명백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 삼고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을 가하고자 한다. 우리가 인종을 이야기할 때는 유색인을 이야기한다는 가정부터 시작해 보자. '리쎌 웨폰'과같은 인기 시리즈는 흑인 배우가 주역을 맡기 때문에 좋은 예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빅터/빅토리아'는 유색인이 중요한 역에 전혀 안 나오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떠오를 가능성이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관객은 유색인이 한명이라고 나왔는지 기억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여기에 깔린 가정은 명백하다. 흰색은 색깔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흰색은 다른 인종들이 유색이라고 정의되어야 하는 비가시적 기준이 된다.
이 글의 요점은 유색인의 묘사를 분석하는 것이 실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석에서 백인을 배제하는 것이 실수라는 것이다. '리쎌 웨폰' 영화들은 이런 맥락에서 특히 흥미롭다. 이 영화는 백인 남성을 다른 인종의 남성과 묶는 오랜 미국의 대중문화 전통에 속한다. 19세기 미국 소설은 인종 간의 남성 유대로 가득 차 있다.
인기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시리즈인 '론 레인저'는 제목에 나오는 백인 주인공과 충실한 북미 원주민 보조자 톤토를 묶었다. 보조자라는 용어의 의미를 주의해 보라. 톤토는 언제나 보조자로 지칭되는데 이것은 서사에서 그의 위치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론 레이저는 주인공이며 원주민은 그를 보조하는 마이너 캐릭터인 것이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관계나 론 레이저가 톤토를 대하는 자비로운 태도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는커녕 친절한 동반자로 보인다.
'리쎌 웨폰' 영화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금방 눈에 띈다. 흑인 캐릭터가 보조자가 아닌 것이다. 그는 백인 캐릭터와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과 흑인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하는 것에서의 변화이다. 글로버는 건실한 중류층의 가정적인 남자이고 깁슨은 정신 건강이 위태로운 불안정한 독신 남성역을 한다. 그는 언제라도 폭력적인 행동을 터뜨릴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하면 우리는 이 영화에서 흑인의 묘사에 대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백인의 묘사에 대해서도 배우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조차도 첫인상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글로버 캐릭터가 흑인에 대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신선한 이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시리즈의 영화들은 그의 편안한 중산층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그가 활력을 잃게 되었다고 묘사한다. 영화는 그가 나이 먹는 데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며 이것은 그의 개인적 삶에서 억압적 가정생활과 합쳐져서 다른 상황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였을 부분의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그중 하나는 글로버 캐릭터가 활력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훌륭한 시민의 가정생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가 남자에게서 활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기에 긍정적인 글로버의 이미지는 많은 면에서 처량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규정하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스타 시스템도 여기에 한몫한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멜 깁슨은 대니 글로버가 누려보지 못한 동경의 대상이 되는 스타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깁슨은 스크린 크레딧에 먼저 올라갔고, 배역마다 엄청난 개런티를 받는 슈퍼스타로 대중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깁슨과 글로버 캐릭터가 '리쎌 웨폰' 시리즈에서 모든 면에서 동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글로버 캐릭터는 영화의 서사 구조 내에서는 깁슨과 동등한 위치를 공유한다. 그들의 관계가 론 레이저와 톤토의 관계와 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바로 이 점에서이다.
최근 미국 영화들은 너무나 자주 흑인 남성을 위협적인 인물로 묘사하며, 백인 남성은 의심할 바 없는 표준으로 묘사하여서 그 표준에 의하면 흑인들은 불안정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가령 '허영의 불꽃'에서는 백인 캐릭터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뉴욕 슬럼가로 들어간다. 그 경험은 위협적인 흑인들의 출현에 의해 즉시 악몽이 된다. 그들은 죄 없는 피해자를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도시의 황폐한 풍경에 등장하며 우리가 그들의 동네가 라이프스타일을 보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다.
이 문제를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흑인은 자주 백인과 다르게 보이고, 그 차이는 생소하고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낯선 캐릭터이고, 백인은 정상적인 캐릭터이다. 그러나 흑인 캐릭터도 마찬가지로 쉽게 표준으로 제시될 수 있고, 그 기준에 따르면 백인이 생소하게 보일 수 있다. 아니면 백인의 표준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무서운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이것을 변용한 장면이 '증오'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흑인이 지배적 사회계층이고 백인은 억압받는 하위계층이다.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인종차별적인 업주는 백인 공장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한다. 절박한 백인 공장 노동자는 소외 계층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려고 업주를 납치한다. 분명히 이 영화는 다른 예들과 다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전제가 '보이즈 앤 후드' 같은 영화의 전제와는 다른 비사실적인 전제로 즉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표현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스테레오타입을 의문시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증오'의 많은 효과들은 배우들이 자기 인종의 스테레오타입과는 너무나 벗어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는 데서 온다. 영화의 가치는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관객을 자극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의도는 높이 살만하지만, 단순한 역할 전도의 전략은 피부는 다른지만 우리는 모두 같다는 전제를 기초로 한다. 이것은 양쪽 집단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흑인은 편견을 가진 전형적인 중상류층 백인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며, 백인들은 고상한 노동 계층 흑인처럼 행동한다. 게다가 원래 흑인 하위계층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호감이 가는 주인공 역에 존 트라볼타의 스타 파워를 이용한 것은, 사실상 배우의 백인성에 동정을 갖게 만들며, 악역에 벨라폰테를 캐스팅한 것은 배우의 인종을 악한 행위와 연관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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