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텔레비전의 형식과 스타일의 차이
이미지의 성격과 관람환경의 차이는 영화와 텔레비전의 형식과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텔레비전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지만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편성은 영화관의 영화 상영과 아주 다르다. 네트워크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에는 뉴스, 토크쇼, 연속극, 시트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공영방송과 유료 케이블을 제외하면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에는 프로그램 앞, 중간, 뒤에 광고가 포함된다. 많은 TV 방송국은 24시간 방송을 한다. 따라서 텔레비전은 특정 프로그램을 많은 다른 짤막한 단락들과 통합하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가령 2001년에 폭스의 황금시간대 일요일 밤 프로그램 편성에는 '심슨'과 '말콤'에 이어 '엑스 파일'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두 시간 내내 TV를 보는 시청자는 광고 외에도 짧은 최신 뉴스, 다음 주의 예고편의 장면을 볼 것이다. 두 시간의 시청은 짧은 단락으로 나눠진 여러 타입의 프로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 것을 보는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을 위해 우리는 황금시간대 편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네트워크 방송의 시리즈 포맷에 초점을 맞추겠다. TV 시리즈가 할리우드 장편영화와 비슷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스토리를 들려주지만, 포맷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현재 TV 시리즈 포맷은 아래에서 논의할 서사구조 면에서 심오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변화에 접근할 것이다. 영화의 장르나 타입에 상관없이 장편 영화는 서사적 질문을 해결하는 데 강한 강조점을 둔다. '저주받은 도시'와 같은 SF 영화에서 우리는 지구를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외계인 아이들을 지구에서 몰아내는데 인간들이 성공할지 알고 싶어한다. 우리는 마지막에 한 명만 빼고 모든 아이가 폭파될 때 그 대답을 알게 된다. 이러한 운명에서 도망치는 한 명의 아이는 인간적 감정을 습득한 표시를 보이며, 그의 모호한 표정에 카메라가 머물 때 그의 어머니가 그를 태우고 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그 아이가 우리 편인지 그들 편인지 모른다. 관객을 겁주는 것이 단골 메뉴인 SF에서 이런 엔딩은 흔한 것이다. 또한 영화가 성공적인 경우 속편이 나올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주인공 의사는 아이들과 함께 죽는다. 마찬가지로 여자주인공은 아이들이 그녀가 자살하게 하기 위해 텔레파시를 사용하면서 잔인한 죽임을 당한다. 이 두 명의 주인공은 영화 끝부분에 죽는다.
전통적인 텔레비전 시리즈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매주 거의 같은 관계를 서로 유지한다. '저주받은 도시'라는 전통적인 텔레비전 시리즈를 한번 상상해 보자. 우리의 가상적인 시리즈와 영화의 가장 명백한 차이는 영화에서 리브, 앨리, 파레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에피소드마다 끝에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리즈에서는 파레 캐릭터와 그의 아내가 부차적인 인물일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커리어인가 아니면 가족인가의 긴장에 의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러한 시리즈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 때 그 인물의 아내가 갑자기 교장직을 사임하고 아기를 갖도록 한다는 것은 굉장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텔레비전 시리즈에서는 인물들이나 그들의 상호관계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머피 브라운은 그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프로에서 그 프로가 여러 시즌 방영된 다음에 아기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카루소는 'NYPD 블루'라는 인기 프로를 떠났고, 그의 캐릭터는 지미 스미스가 연기한 캐릭터로 대치되었다. 그런데 그는 또 릭 슈로더가 연기한 캐릭터로 대치되었는데, 릭 슈로더도 나중에 그 쇼를 떠났고, 그 쇼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텔레비전 시리즈는 매회를 같은 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가령 '머피 브라운'에서 우리는 같은 뉴스룸에 있는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매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머피의 모스인 마일즈는 걱정이 팔자인 신경과민인 사람이다. 우리는 그 쇼에서 그가 치료받아서 자신만만한 남자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스타트렉'에서 스포크가 감정적인 사람이 되어서 논리보다는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피킷 펜스'에서 위스콘신의 작은 마을의 삶은 주인공인 브로크 외에도 엄격한 보운 판사 그리고 너무나 야심만만한 변호사인 웜보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다른 캐릭터들은 등장하고 떠난다. 여러 캐릭터가 떠나가지만 보운과 웜보우와 젊은 연인들이 다시 등장해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많은 면에서 영화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진다. 우리가 '저주받은 도시'를 볼 때 우리는 정말 그 인물들의 운명을 모르고 또 실제로 두 명의 주인공은 죽는다. 우리가 '크로싱 조단'의 에피소드를 볼 때는 그 극 중 행동이 아무리 극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한순간도 주인공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쇼를 볼 때 우리는 낯익은 인물들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들은 우리가 매주 다시 방문하기를 기대하는 옛 친구와 같다. '리쎌 웨폰'과 같은 시리즈에서 변화를 볼 수 있긴 하지만 영화는 거의 항상 처음에 제기한 많은 서사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개별 인물들과 인물들 간의 관계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심각하게 바뀐다. 이것은 거의 모든 영화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우리가 그것을 보러 갈 수 있도록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가 우리의 관심을 성취해 만족스럽게 극장을 나설 수 있게 하는 독립된 단위이다. 반면, 텔레비전의 각 에피소드는 우리가 이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또 우리가 단일 에피소드 속에서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원치 않는 시리즈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현재 텔레비전에서 변하고 있다. 획기적인 네트워크 방송국의 쇼는 모두 주요 인물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 그리고 이때까지 알아 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을 포함하는 훨씬 더 복잡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24'와 '로스트'와 같은 쇼들은 시작 부분에 있었던 질서와 안정의 회복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매 에피소드를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에피소드는 서사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언제나 새로운 아슬아슬한 순간으로 끝나면서 긴장된 질문들로 에피소드를 끝낸다. 그러나 이 쇼들의 어떤 양상들은 전통적인 텔레비전을 닮았다. 마찬가지로, 비록 다른 양상들과 많은 다른 인물들은 예기치 않게 변하지만 베로니카 마스는 시리즈 내내 자신의 사설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꽤 고정된 관계를 누리고 있다. 많은 며에서 이 새로운 시리즈들은 시즌마다, 그리고 심지어는 시즌 내에서 에피소드마다 복잡한 서사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제때 세심하게 적절한 시퀀스에 주의를 기울여서 시청해야만 한다. '로스트'와 같은 많은 최상의 쇼들은 극도로 세련되고 형식적으로 정교한 플롯 구조를 발전시킨다. 이것은 시청자가 어떤 시즌에 어떤 에피소드를 어떤 수서로 보더라도 에피소드의 풍부함을 잃거나 파괴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전통적인 시리즈와는 거리가 멀다. 이 새로운 텔레비전 시리즈가 영화와의 경계선을 흐리고 있는 양태는 장르 면에서 생각하면 분명히 드러난다. 텔레비전은 장르 전통의 활력을 이어가고 재창조하면서 영화의 영역을 사실상 뺏어오고 있다.
'영화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미학적 판단에 대한 이야기 (0) | 2023.09.18 |
---|---|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 (0) | 2023.09.18 |
영화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 (0) | 2023.09.14 |
연극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 (0) | 2023.09.13 |
관객에 대한 이야기 (0) | 2023.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