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스타
영화스타는 영화에 출연한 연기자일 뿐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프로필과 인터뷰, 가십 칼럼, 팬클럽과 잡지, 텔레비전 토크와 타블로이드 쇼, 그리고 패러디와 모방을 통해 유통된다. 클라크 게이블은 1934년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이후에 유명해졌는데 아카데미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장면에서 셔츠를 벗고 속옷을 안 입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클라크 게이블을 흉내를 내려고 하면서 이것 때문에 미국에서의 속옷 판매량이 급감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은 그가 영화에서의 배역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게이블이 돌아왔고 가슨이 그를 붙잡았다"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이 앞으로의 영화를 마케팅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베트남전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존 웨인을 국방부 장관으로"라는 범퍼 스티커가 유행했는데, 스타의 강력하고 과단성 있는 남성성을 정치적 영역으로 끌어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두 개의 경우에는 배역을 맡은 배우, 실생활에서의 배우, 배우의 이미지 간에 의미의 미끄러짐이 생긴다. 영화에서 어떤 인물의 행동을 설명할 때 그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배우의 이름을 사용하고, 심지어 어떤 캐릭터의 행동이 배우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영화 연기는 언제나 배우와 관객 사이의 중재된 연결점 역할을 하고 대부분의 팬은 자신들의 우상을 직접 보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배우들을 영화 연기에서처럼 항상 살아있게 만들고, 메릴린 먼로와 제임스 딘과 같은 몇몇 스타들은 죽은 지 몇십 년 후에도 팬레터를 받고 사랑받는 현상을 낳게 했다. 사람들은 스타보다는 스타의 이미지를 흠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타 이미지란 무엇인가?
스타 이미지랑 대중에게 어필하고 배우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만드는 특징들이다. 이 특징들은 항상 불변의 것이 아니라 바뀌는 관객의 취향, 영화산업의 트렌드, 배우의 육체적 노쇠에 맞게 자주 조정된다. 어떤 스타는 단단히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연기를 하기보다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로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 존 웨인, 로버트 미첨,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남자 액션 스타들은 이런 식으로 파악되었다. 가끔 스타의 이미지는 너무나 고정되어 그 이미지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연기함으로써 그가 그것을 깨뜨리려 할 때도 대중들은 그러한 일탈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원래 이미지를 견지한다. 줄리 앤드루스가 좋은 예이다. 전체관람가 등급의 영화에서 순결하고 발랄한 순진한 여자로서 그녀의 이미지는 첫 번째 영화 '메리 포핀스'에 의해 확립되었고 '사운드 오브 뮤직'에 의해 바로 강화되었다. 같은 시기에 그녀가 '에밀리를 미국 사람으로 만들기'에서 성적으로 성숙한 역할로 나왔어도 그 이미지에 아무 영향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무엇을 하든지 메리 포핀스로 보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프린세스 다이어리'와 '프린세스 다이어리 2'에서 그 타입의 역할로 돌아갔을 때 그녀에게 다른 역할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평가들은 그녀를 최고의 가족 배우라고 칭송했다.
어떤 스타들은 고정된 이미지가 없고 다양한 역할로 오히려 높이 평가받는다. 케빈 스페이시, 더스틴 호프만, 메릴 스트리프, 조니 뎁, 지미 스미스가 좋은 예이다. 그러나 스타는 뜨고 지며, 스타 시스템에는 역사가 있다.
스타 시스템
초기 영화에는 스타가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배우의 이름을 올리거나 광고하기 위해 사용하지도 않았다. 1910년 이후에 상황이 변했다. 스타가 처음으로 등장했고 막강한 경제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관객들이 스타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그런 근거에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을 몇몇 제작자 측에서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우가 요구할 수 있는 돈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우를 무명의 상태로 두자는 제작자들의 정책에 반대했다. 1910년대 중반쯤에서 스타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고, 찰리 채플린과 같은 배우는 1년에 백만 달러 이상을 벌고 있었다. 1930년대 즈음에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독점적인 계약으로 많은 스타를 기용했고 심지어 세심하게 계획된 역할과 홍보 활동을 통해 스타를 만들기도 했다. 1950년대에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할 때 많은 스타는 스스로 제작사를 차렸고 종종 자신들의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데 참여했으며, 이것은 오늘날도 같은 상황이다.
이 시기에는 지배적인 문화적 가치관과 산업의 제한이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결정했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 거의 모든 스타는 백인이었다. 다른 인종의 배우는 단역이나 매우 정형화된 역할로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흑인 여배우인 해리 맥다니엘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경화에서 매미와 하녀라는 조연으로 스타덤에 도달했고 심지어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다. 스테핀 페칫은 속이고, 무능하고, 비굴한 캐릭터로 너무나 유명해서 그 이름이 부정적 흑인 스테레오타입의 대명사가 되었다.
민권운동이 미국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기회를 열었던 1960년대에는 시드니 포이티에가 주변적인 역할이 아니라 주역을 받았다. 그는 인종차별주의 사회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하고 품위가 있는 현명한 흑인으로 스타 페르소나를 구축했다. 그 후에 포이티에처럼 거의 영웅적인 인물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제한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웨슬리 스나입스와 같은 배우들이 자기 종족을 비하한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데몰리션 맨'과 같은 영화에서 잔인한 악당 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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